[CBN뉴스 안영준 기자]= 조국 광복의 달 8월을 보낸 권영택 영양군수의 심정은 요즘 가을처럼 허허롭다.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구한말 경술국치 당시 왜적과 일제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순국한 조상들의 항일 투쟁사가 생각나 때문이다.
최근 영화 명량이 관람객 1700만을 돌파하면서 권 군수는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을 대승리로 이끌다가 이순신 장군과 함께 호국영령이 된 병암 권전(1549-1598)장군의 이야기를 주변에 들려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난 4일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곡문중 종손 권대용(66)씨를 만난 자리에서 권 군수는 조상 권전에 대해 해전 때마다 조선수군의 선봉에 서서 용맹함과 전술전략이 뛰어 났기에 왜란 중에 판옥선 함(만호)에서 장군의 바로 아래 장수인 아장(亞將)에 까지 올랐다고 하면서 권전의 역할에 대해 학술적으로 재조명 해볼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넬슨제독에 버금가는 세계 해전사의 명제독으로 이름 오른 이순신을 가장 지근거리에 보좌하면서 왜 수군을 격멸한 그 배경은 주변 지형지물과 조류등을 잘 활용한 기막힌 전술전략. 전략의 초안은 권전에게서 나왔지 않느냐는 게 이야기의 주 내용이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당시 이순신 장군은 53세, 권전 선생은 50세로 세 살 차이였습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함께 전사한 옛 문헌의 기록을 살펴 보면 판옥선 12척을 이끌고 왜적을 맞닥뜨려 생사를 같이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또 그는 구한말 당시 만주로 건너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짓고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추산 권기일(1886-1920)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도 곁들인다.
전 재산을 털어 만주로 가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권기일은 신흥무관학교 최후의 1인으로 홀로 항전하다 일본군에 포위되면서 순국한 항일독립지사이다.
특히 지난달 광복절과 경술국치일에 즈음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 같이 던진 문중 조상들의 항일투쟁사가 알려지게 되면서 권 군수는 가문의 내림이 기도 한 호국충절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가다듬기도 했다.
“한분은 임진왜란으로, 한분은 독립운동으로 목숨 바치셨지요. 모두 종손이셨 습니다. 일본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한반도를 넘보는 듯한데 지금부터라 도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일본과 싸울 각오를 다지기 도 한 그의 조상 이야기는 추석 연휴 내내 이어졌다.
권 군수의 가문이 영양에 터를 잡게 된 내력은 이렇다. 권전 장군의 동생인 권지에게 왜란이 끝나고 형의 공로를 인정해 선조가 벼슬을 내리자 ‘형의 공로를 동생이 차지할 수 없다’고 하면서 벼슬을 뿌리치고 식솔들을 이끌고 영양 입암면 산해리로 옮겨 오면서 부터다.
권지는 터를 잡자마자 지역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권전과 권지는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 부제학 등을 마애 권예(1495-1549)의 손자들. 모두 무과에 급제한 장수로 왜란에 참전했다. 권 군수가 바로 권예의 직계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