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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일제강점기 농업시설인 '삼지수로'의 역사 복원


김병화 기자 / kbh1199@hanmail.net입력 : 2016년 01월 15일
↑↑ 삼지수로 역사 복원-삼지수로 입수구 수문
ⓒ CBN 뉴스
[김병화 기자]=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이영재 학예연구사는 2016년 1월 학술지 미게재 논문인 '삼지수로의 건설과 문화변동'을 통해서 경상북도 영양군 삼지리에 위치한 농업시설인 삼지수로의 건설과정과 농업 및 지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밝혔다.

 그동안 지역에서는 삼지수로가 일제강점기에 건설이 시작되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으며, 수로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도 별다른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논문에 따르면 삼지수로는 일제강점기 말인 1942년에 삼지리, 하원리, 동부리, 현리 일대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함으로써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을 실현하기 위해서 건설공사가 추진되었다.

 당시 삼지리 일대에는 원당지를 비롯하여 3곳의 저수지가 있었지만 담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대부분의 농경지가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주민들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3년에 한 번씩 가뭄이 들었다.”고 할 정도로 삼지리 일대에는 관개용수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비록 인접한 곳에 양호한 수자원을 가진 반변천(半邊川)이 있었지만, 약 10m에 이르는 하식애(河蝕崖)가 발달하여 보(洑)를 설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제는 현지의 지리적 조건을 고려해서 수로터널(aqueduct tunnel)에 관개수로(irrigation canal)를 연결한 농업시설인 삼지수로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삼지수로 건설공사는 1941년부터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수로터널을 약 10m 굴착한 시점에서 중단되었으며, 8․15 광복 후인 1949년에 2차로 굴착공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또다시 중단되었으며, 휴전 후인 1953년에 3차로 건설공사가 시작되어 1957년에야 비로소 완공할 수 있었다.

 삼지수로의 건설로 인하여 안정적인 관개용수를 확보함으로써 삼지리 일대에는 수도재배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으며, 수로에서 취수는 물론 빨래와 목욕 등을 함으로써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삼지1리의 경우 관개용수를 활용한 도정시설인 정미소까지 건립하여 운영함으로써 삼지수로는 농업발전과 생활문화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영재 학예연구사는 “일제강점기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농업시설로서 건설이 추진된 삼지수로가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지속되어 약 680m에 이르는 수로터널을 뚫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지역사 및 농업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이 논문은 향후 자료보완을 거쳐 2016년 3월경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김병화 기자 / kbh1199@hanmail.net입력 : 2016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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